인지활동 자료, 결국 직접 만들었습니다 — 3개월 걸린 이야기

주간보호센터를 하면서 매달 나가는 돈 중에 프로그램 자료비가 있습니다.

인지활동 교재를 파는 곳은 많습니다. 저희도 여러 곳 써봤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계속 사는 게 맞나.”

올해 초부터 조금씩 만들기 시작해서 3개월쯤 걸렸습니다. 지금은 저희 센터에서 그걸 씁니다.


왜 직접 만들기로 했나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1. 너무 단순한 게 반복됩니다

이게 첫 번째입니다. 사서 쓰는 자료는 비슷한 형태가 계속 돌아옵니다. 색칠하기, 선 잇기, 빈칸 채우기. 한 달 쓰면 어르신들이 알아보십니다.

앞서 인지 프로그램 운영 글에서도 적었지만, 난이도가 낮은 활동은 반응이 없습니다. 어르신들은 쉬운 걸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중 자료는 안전하게 만들다 보니 대개 쉬운 쪽으로 갑니다.

2. 비용이 계속 나갑니다

두 번째는 돈입니다. 한 번 사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매달, 매 분기 계속 나갑니다. 그런데 받아보면 늘 비슷합니다.

한 번의 비용이 크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만큼 쓰는데 결과가 이건가” 하는 생각이 쌓입니다. 그게 아깝다는 느낌으로 오면 그때가 만들어 볼 때입니다.


빙고 숫자를 뽑는 인지활동 프로그램 교구
빙고 숫자판. 인쇄물과 뽑기통만 있으면 세 달을 씁니다.

무엇을 만들었나

크게 두 갈래로 나눴습니다. 진행자가 쓰는 것과 어르신이 직접 만지시는 것입니다.

진행자용 — TV·빔프로젝터로 다 함께

앞에서 화면을 띄우고 직원이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단체 프로그램에 씁니다.

  • 문제를 음성으로 읽어 줍니다
  • 카운트다운 타이머를 켜고 끌 수 있습니다
  • 무선 프레젠터로 넘길 수 있습니다 — 진행하면서 노트북 앞에 서 있지 않아도 됩니다

어르신용 — 태블릿으로 직접

어르신이 손으로 눌러 가며 하시는 방식입니다. 개별 활동이나 자유 시간에 씁니다.

  • 이름을 누르고 시작하면 본인 기록이 남습니다
  • 추억 앨범 — 옛 물건, 고향 풍경, 명절 사진을 등록해 두면 회상 활동에 나옵니다
  • 활동 기록이 날짜·이름·활동·단계·점수로 정리돼서 급여제공기록지 쓸 때 참고가 됩니다

영역은 9개

오늘은 며칠(지남력) · 숫자 놀이 · 추억 회상 · 낱말 놀이 · 시장 놀이 · 색깔 모양 · 다른 그림 찾기 · 순서 기억 · 몸으로 놀이

난이도는 3단계

단계대상
1단계중증
2단계중등도
3단계경증

이게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입니다. 저희는 조를 나누지 않고 같은 활동을 하되 난이도를 다르게 갑니다. 그러려면 같은 영역에 세 가지 수준이 다 있어야 합니다. 시중 자료는 대개 한 가지 수준으로만 나옵니다.

빙고는 따로

빙고가 저희 센터에서 제일 반응이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그래서 따로 만들었습니다.

  • 숫자(1~25, 1~50)뿐 아니라 과일·채소, 추억의 물건으로도 됩니다
  • 판 크기를 3×3 / 4×4 / 5×5로 고를 수 있습니다
  • 어르신마다 다른 판이 인쇄됩니다. 무작위로 섞여서 나오니까요

여기에 추첨기를 붙였습니다. 화면에서 공이 둥근 통 안에서 돌다가 하나씩 나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이게 반응이 좋습니다.


직접 만든 회전판 룰렛 인지활동 교구
직접 만든 회전판. 주제를 바꿔 끼우면 프로그램이 매번 달라집니다.

문제를 고르는 기준

기준은 하나였습니다. 어르신 세대에 맞출 것.

그래서 문제가 이런 식입니다.

  • 설날 아침, 어른께 드리는 큰절 인사를 무엇이라 하나요?
  • 추석에 먹는 반달 모양 떡은 무엇인가요?
  • 김장 김치를 담글 때 주로 쓰는 채소는 무엇인가요?
  • 더운 여름, 손으로 부쳐 바람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명절, 김장, 부채. 지금 20대에게 물으면 모르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어르신들은 평생 하신 일입니다.

회상 활동을 넣은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옛 기억을 꺼내는 활동은 그 자체로 인지에 도움이 됩니다. 오래된 기억은 치매가 진행돼도 비교적 늦게까지 남습니다. 최근 일은 잊으셔도 젊은 시절 이야기는 술술 나오십니다.

그러니 어르신이 못 하시는 걸 시키는 게 아니라, 잘하시는 걸 꺼내 드리는 쪽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게 자료를 만드는 것과 사서 쓰는 것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사서 쓰면 우리 어르신들이 누구인지가 반영이 안 됩니다.

문제를 읽어 주는 기능도 같은 맥락입니다. 귀가 어두우신 분, 한글을 모르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들이 참여를 안 하시는 건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형태로는 할 수 없으셔서입니다. 소리로 읽어 주면 그 문제가 사라집니다.


손 운동과 신체활동을 함께하는 프로그램 자료
손 운동 자료. 상지 근력과 인지를 함께 자극합니다.

3개월, 그리고 지금도

올해 초부터 시작해서 3개월쯤 걸렸습니다. 한 번에 몰아서 한 게 아니라 조금씩 했습니다. 센터 운영하면서 하는 일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고치고 있습니다. 문제를 더 넣고, 새로운 활동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이게 사서 쓰는 것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반응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바꿀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어떤 문제에서 막히시는지, 어떤 활동에서 웃으시는지 보고 다음 주에 반영합니다. 사온 교재는 그게 안 됩니다.


옛 노래를 활용한 회상 프로그램 가사 자료
회상 프로그램용 옛 노래 가사. 가사를 크게 뽑는 것이 핵심입니다.

직원들 반응

생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어르신 심심해하실 때 바로 드릴 수 있어서 좋다” 는 것입니다. 정규 프로그램 시간이 아니어도 됩니다. 티타임이나 오후 자유 시간에 태블릿 하나 켜 드리면 됩니다.

빙고도 반응이 좋습니다. 숫자만 있는 게 아니라 과일이나 추억의 물건으로도 되니까 같은 빙고를 여러 번 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화면에서 공이 돌아가는 것도 직원들이 재밌어합니다.

적응은 금방 했습니다. 어렵게 만들지 않았거든요. 화면 몇 개 누르면 시작됩니다. 직원 교육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직접 만든 월간 프로그램 계획서 양식
월간 프로그램 계획서 양식. 매달 손으로 짜지 않으려고 만든 틀입니다.

어르신들 반응

여기는 좀 나뉩니다.

처음에는 태블릿을 어색해하셨습니다. 낯설어하시고, 손대기를 꺼리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당연합니다. 평생 안 쓰시던 물건이니까요.

그런데 옆에 앉아서 몇 번 알려드리니 재밌어하셨습니다. 두세 번이면 됩니다. “여기 누르시면 돼요” 하고 같이 해보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다만 나뉘는 지점이 있습니다.

어르신태블릿 적응
인지가 괜찮으신 분금방 적응하시고 혼자 하십니다
인지 저하가 있으신 분옆에서 어느 정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인지 저하가 있으신 분은 계속 곁에 있어야 합니다. 화면을 못 찾으시거나, 방금 뭘 하고 있었는지 잊으십니다. 그러니 태블릿을 드린다고 손이 덜 가는 게 아닙니다. 이건 미리 아셔야 합니다.

대신 이런 분들께는 진행자용을 큰 화면에 띄워 놓고 다 같이 하는 쪽이 낫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나눠 만든 것입니다.


만들어 보니 알게 된 것

세 가지입니다.

1. 자료가 문제였던 게 아니라 ‘우리 어르신’이 반영이 안 됐던 것입니다. 시중 자료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모든 센터에 다 맞게 만들려니 평균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은 평균이 아니라 오늘 그 자리에 계신 분들에게 맞아야 합니다.

2. 만드는 것보다 고치는 게 본론입니다. 3개월 걸려 만든 건 시작일 뿐입니다. 실제 값어치는 반응 보고 계속 고치는 데서 나옵니다.

3.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 기준이 필요합니다. 어려운 걸 만들려고 하면 못 만듭니다. “우리 어르신들이 뭘 잘하시나” 하나만 잡고 시작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만들다 보면 정리됩니다.


정리

항목내용
만든 이유시중 자료가 너무 단순한 게 반복 + 비용이 계속 나감
기간올해 초부터 3개월, 지금도 업데이트 중
구성진행자용(TV·빔) / 어르신용(태블릿) 두 갈래
영역9개 (지남력·숫자·회상·낱말·시장·색깔·다른그림·순서·몸놀이)
난이도3단계 (중증·중등도·경증)
문제 기준어르신 세대에 맞춤 — 명절, 김장, 옛 물건
접근성문제 읽어주기 — 귀 어두우신 분, 한글 모르시는 분
직원 반응좋음. 적응 금방. 심심해하실 때 바로 제공 가능
어르신 반응처음엔 어색 → 몇 번 알려드리면 재밌어하심. 인지 저하 시 곁에서 도움 필요

직접 만드는 걸 모두에게 권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듭니다. 다만 자료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그건 자료가 우리 어르신들과 안 맞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때는 사는 것보다 뭐가 안 맞는지 적어 보는 것부터 하시면 됩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저희 센터에서 쓰려고 만든 것이라 따로 배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떤 기준으로 만들었는지는 위에 다 적었으니, 만들어 보실 분들께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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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6년 8월 기준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프로그램 구성과 어르신 반응은 기관과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인지활동형 프로그램의 법정 제공 기준은 「장기요양급여 제공기준 및 급여비용 산정방법 등에 관한 고시」 제30조를 따르며, 구체적인 적용은 국민건강보험공단(1577-1000)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 김주민
사회복지사 · 일반기계기사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연구소에서 일하다 2017년 어르신 네 분으로 주간보호센터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경기 용인 수지에서 53분을 모시고 있고, 2025년부터 복지용구 사업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10년간 겪은 것들을 이곳에 적습니다. → 소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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